ARTNOM
아트놈 (b.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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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go-round, 동심으로의 초대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보기 편한 캐릭터가 아트와 만났을 때, 우린 낯익은 편안함과 동시에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미술의 한축 ‘팝아트’를 떠올리게 된다. 그 안에 작가의 확고한 자기시선이 가미된다면,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탑재한 좋은 미술작품이 탄생한다. 2020년 오늘의 팝을 가장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으로 끌어내고 있는 아트놈 작가는 지난 개인전을 통해 “강력한 시각적 모티브, 전통 요소(신화 혹은 역사화)의 차용, 자기복제술과 유희(Funnyism), 혼성잡종 시대 속 간결함(평면화), 현실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등”을 자기만의 해학과 현상미학으로 구현해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늘상 궁금해지는 아트놈의 작업스타일은 “아트놈 하면 이것이지!”라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쾌함과 동시에 자신의 현재적 감수성을 작품안에 녹여내려는 진지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리히텐슈타인이 <행복한 눈물>이 다시금 회자되는 작금의 시기, 마이크 세코스키가 그린 만화의 한 컷을 확대하고 인쇄한 미국중심의 팝은 우리에게 동심보다는 자본과 상업논리를 떠오르게 한다. 이와는 별개로 예화랑에서 처음 선보이는 아트놈의 ‘동심(童心)미학’은 현대미술에 무관심했던 일반인들의 눈을 아시아적 정체성으로 돌려놓는 반등현상을 일으킨다. 창조적이지도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서구적 애니팝의 비싼 가격에 놀랐다가도, 아트놈의 작품이 더해주는 유희와 노스텔지어를 파고들다보면 어느새 작품을 소중한 장소 어디쯤 놓고 싶은 기분 안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미술의 가치가 창조성이나 미(美)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동시대성을 해석하고 호흡할 것인가라는 작가정신과 관련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동심 어린 만화캐릭터들이 아트놈의 작품 속에서 되살아났다. 작가는 명화가 주는 아우라를 오늘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지난 전시에 이어서, 동심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과 데이빗 호크니 등의 이미지 등을 차용해 오늘의 작가정신으로 재무장했다. 이는 대가(大家)들의 동시대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자 작가정체성을 만들어가기 ‘아트놈만의 위트미학’을 만들기 위한 과도기적 시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무지개는 정치적 페미니즘이나 사회비판적 요소를 담기보다 동심과 관계된 환타지성을 되살리겠다는 순수성에의 표현이다. 미야자키의 만화 <마녀배달부 키키>나 19세기 환상미학의 중심에 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등은 심플한 메시지를 강조한 패턴과 더불어 작가의 명확한 자기 철학이 패러디와 오마쥬의 시선에 의해 재조명되었다. 외연을 가로지른 내면여행에 대한 명확한 기호는 아트놈 만의 개성화 작업이 구축된 것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작품해석에 대한 자신만의 소신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어떤 대상을 포장된 메시지로 규정짓기보다 좋아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내 작품의 중요 동기인 것 같다. 그 안에서 토끼소녀가 ‘가지’로, 말썽꾸러기 강아지가 ‘모타루’ 등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이들 캐릭터는 모두 나 자신의 여러 단면이다. 농담과 유희를 좋아하는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들, 좋아하는 분들과 대화 속에서 만나는 나 자신의 성격 등이 작품해석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주인공들은 강인하면서도 융합적인 캐릭터들로, 이는 여권신장이 아닌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담은 순수성에 의해 선택됐다. 예를 들어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여주인공이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처럼, 내 작품들은 정치적 메시지이기보다 평화와 위안의 미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미국출신 미학자 아서 단토(Arthur Danto, 1924~2013)는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은 재현(再現)을, 모더니즘 시기의 미술은 물질과 추상을, 오늘의 미술은 팝아트로 인한 시각적 미술의 종말을 그린다.”고 역설한 바 있다. 시각이란 미술의 본질이 보편적 시대정신에서 작가 개인의 정서와 철학으로 옮겨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 컨템포러리 아트의 전제조건은 팝아트를 그려내더라도 “비슷한 대상을 재현하는 기술이 아닌, 새로운 자기 개성화의 선언”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는 만화의 이미지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아닌, 작가가 체험한 정서들을 개성화하여 자신만의 아우라를 작품에 전유시켜 무의식적 보편성에 이르게 하는 고도의 전략이다. 아트놈의 아트팝은 조형적으로 쉬운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개념적으로는 한국적 감수성을 덧입은 깊이 있는 미술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의 가치가 조형을 넘어 개념적인 철학으로 이동한 것은 ‘작가의 수사적인 발언’이 미술자본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작가의 개념이 강해질수록 양식은 자유로워지고 다원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아트놈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고, 어떤 경험적 대상도 예술로 추구할 수 있는 다원화 시대의 전략을 탑재한다. 말 그대로 아트놈의 밝고 활기찬 그림들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가능성의 메시지를 선사하는 것이다.
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리움을 찾고자 떠나는 나그네.
단순화된 캐릭터들은 나의 분신이며 판타지다.
힘 없이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아저씨들이고 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며 꿈을 꾸었던 전설이다.
소녀의 아름다운 감성이 미묘하게 나의 뇌리를 자극하며 두근거리게 만든다.
육체는 이미 썩어가고 있지만 피터팬을 찾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하늘을 날고 있다.
내가 처음 캐릭터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이었다.
마스코트, 심볼 등의 말은 통용되고 있었으나 아직 캐릭터란 말은 잘 쓰이지 않았던 때 였다.
의미는 잘 몰랐지만 어린시절부터 너무나도 익숙하게 봤었던 것들이다.
만화, 애니메이션,장난감,게임 등 캐릭터는 언제나 우리와 같이 있었다.
현재까지 캐릭터 작업을 하면 재미없었던 순간이 없다.
창작의 고통으로 괴롭기도 했지만 언제나 나에게 행복을 주었던 소재이며 주제이다.
-작가노트